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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양지 전시

전시장소 인사아트센터 전시기간 2009년 11월25일 ~ 2009년12월 1일 전시작가
독특한 필치의 맑고 담백한 사유의 세계
김상철 월간 미술세계 주간

작가 탁양지(卓良枝)의 작업은 다분히 전통적인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지필묵을 중심으로 한 재료 운용이 그러할 뿐 아니라 시서화인(詩書畵印)이 어우러지는 화면의 형식 역시 그러하다. 그럼으로 작가의 화면에는 고졸한 전통적 품격과 정취가 가득하다. 오로지 필묵의 운용과 이를 통해 발현되는 여백의 대비를 통하여 화면을 구축해 나아가는 작가의 작업은 특유의 정적인 함축미와 절제미가 두드러지는 담백함이 장점이다. 이는 분방하고 파격적인 현대 한국화의 실험적 양태와는 다른 고전적 심미관의 발현이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이라 함은 중봉에 의한 유려한 필선과 깊이 있는 묵운(墨韻), 그리고 시정(詩情)이 넘치는 격조 있는 서정적 화면을 말하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러한 형식과 내용을 원칙적으로는 수용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보다 차별화되고 주관화된 내용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중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독특한 운필에 의한 필선의 구사이다. 꼿꼿하게 붓을 세워 중봉(中鋒)을 유지하며 간결하고 단호한 필치로 사물을 개괄해 내는 운필법은 작가의 작업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송곳으로 흙벽에 선을 새겨 넣듯이 분명하고 또렷하다. 이러한 필선들은 남종 문인화에서 추구하고 존숭하는 유려하고 부드러우며 함축적인 운필법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작가는 부드럽고 유연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여성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오히려 모나고 거친 가운데서 전해지는 완강함과 단호함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개별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중국 송(宋) 휘종(徽宗)의 수금체(瘦金體)와도 흡사하다. “운필은 힘 있고 날카로우며 필도(筆道)가 마르고 가늘며 빠르고 강하지만 그 속에는 부드럽고 호방함이 내재되어 있다.”는 수금체에 대한 해설은 작가의 필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며,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작가의 필도가 상대적으로 두텁고 질박하며 담대한 것이라 할 것이다. 
강하고 분명한 필선들을 거침없는 기세로 분명하게 그어 나아가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주저하거나 머뭇거림이 없이 단호하다. 빠르고 거침없는 필선들은 처음부터 소소한 기교적인 변화나 섬세하고 재치 있는 운용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필선을 통해 발현되는 독특한 심미로 일관한다. 필묵의 기본적 요소인 농담이나 강약 같은 내용들조차 배제된 체 오로지 독특한 필치와 여백의 운용만으로 이루어지는 담백한 화면은 여타 수묵 작업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작가만의 특질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부차적이고 설명적인 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작가의 화면은 보다 풍부하고 여유로운 여백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비어있는 듯 한 허허로운 여백과 분명하고 단호한 필선의 조화는 바로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자 조형의 근간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거침없고 단호한 필선들로 산을 세우고 물길을 나눈다. 주저하거나 머뭇거림이 없이 분명한 운필은 구구한 수식이나 부차적인 설명도 없이 오로지 필과 묵에 의한 기세와 기운을 드러날 뿐이다. 남성적인 양강(陽剛)의 기운이 듬뿍 배어 나오는 필선들은 바로 작가의 호흡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칼로 옥을 자르듯, 끌로 바위를 세기 듯 단호하면서 엄정한 필선들은 그렇게 다른 이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작가 특유의 화면을 하나하나 구축해 나아가는 것이다. 
사실 작가의 이러한 독특한 조형 세계는 사뭇 오랜 기간을 통하여 일관되게 견지되어 온 것이다. 지난 70년부터 비롯된 작가의 작품 세계는 줄곧 일관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간 한국화에 일었던 파격적인 변화와 실험 열풍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고수한 채 격동의 세월을 건너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필묵을 통해 이루어지는 맑고 담백한 수묵 산수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의 산수를 굳이 관념, 혹은 전통의 산수로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초 작가의 관심은 단지 산수라는 사물의 형상을 빌어 작가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기운과 기세를 드러내며 이를 통해 발현되는 품격과 격조를 즐기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관된 작업은 근자에 들어 변화의 조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재발견에서 비롯된다.
경남 통영은 작가의 고향이다. 잔잔한 바다가 편안하게 펼쳐지고 올망졸망한 섬들이 병풍처럼 늘어선 남쪽 바닷가가 바로 작가의 고향인 것이다. 날아가는 철새도 때가 되면 제 깃들 곳을 스스로 찾아가게 마련인 것처럼,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게 마련이다. 고향은 그저 나고 자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배태되고 성숙되어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통해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담보하는 총체적인 것이다. 감성과 정서는 고향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절로 몸속에 각인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교육과 학습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훈도되어 오롯이 자리 잡게 되는 가장 원초적인 정신적 가치이다. 북방에서 끌려온 말은 북풍에 울고, 남쪽에서 날아 온 새는 남쪽 가지만을 가려 앉는다는 말은 비록 미물이지만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서는 다를 바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인간에게 있어서 고향의 의미는 각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인간의 감성에 작용하고 정서에 호소하는 작가들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작가의 작업에 나타나는 변화는 사뭇 의미 있는 조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고향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그저 서정적이거나 감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유의 강단 있는 필치로 표현되는 고향의 풍경들은 비록 바다와 섬들이 어우러진 모양이지만, 그것은 세세한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마치 부호처럼 개괄되어진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저 눈만 감으면 절로 떠오르는 고향 풍경들은 군더더기 없는 본질적인 모양으로 재현되며 그것들이 지니고 있을 은밀한 사연들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고 있다. 필은 여전히 단호하지만, 운필의 변화보다는 평면화의 경향이 두드러지며, 산수의 모양은 여전하지만 개괄적인 표현으로 함축되어 있다. 짙푸른 바다색은 거침없는 푸른색으로 칠해져 그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되어진 작가의 고향은 단연 표현적인 경향이 다분한 것이다. 운필의 운용을 통해 품격과 격조의 화면을 지향하던 작가의 작업이 이러한 변화 양태를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작가의 관심이 전통적인 것의 원칙적인 수용과 발현에서 벗어나 점차 적극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으로 변환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칙과 규범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고향의 서정과 감성에 충실한 작가의 작업은 이제 보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새로운 공간을 확보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는 작가가 고향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공간인 동시에, 고향이 작가에게 건네준 선물이기도 한 셈이다.
새로운 공간을 주유하는 작가의 표현은 한결 여유롭다. 예의 날카롭고 단호한 필선들은 여전하지만 상대적으로 분방하고 자유롭다. 형상에 얽매이거나 법칙에 구애됨이 없기에 작가의 화면은 더욱 풍부한 조형의 여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시각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에 의탁하는 것이기에 더욱 풍부한 상상을 담보하고 있다. 대담한 발묵과 더불어 과감한 색채의 도입은 화면에 보다 풍부함과 윤택함을 더하고 있는 점 역시 눈에 띠는 변화라 할 것이다. 비록 새로운 소재와 표현이 차용되고 있다 할지라도 작가 특유의 담백하고 소슬한 품격과 운치는 여전하다. 오히려 원칙적인 전형이 흐트러짐으로 인하여 보다 여유로워 질 수 있음은 바로 작가의 작업이 점차 또 다른 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맑고 담백한 작가의 작업은 실로 독특한 것이다. 만약 작가의 작업을 전통적인 것이라 한다면, 또 동양 회화의 요체가 정신적인 것에 있다 한다면 작가의 근작에 나타나는 변화의 양태들은 단순히 표현이나 조형의 변화로 치부하기 보다는 보다 내밀한 사색과 관조의 산물로 이해함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이는 삶과 더불어 원숙해 가는 작품 세계의 한 전형이라 할 것이다. 보다 여유롭고 분방하며 원만해지는 변화 양태는 마치 원숙한 삶의 너그러움을 이야기하듯 편안하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격조의 품격은 이 속에서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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